북런던 더비(North London Derby)란?
북런던 더비는 잉글랜드런던 북부의 축구팀들인 아스날 FC와 토트넘 홋스퍼 FC 간의 경기를 일컫는 말 입니다.
양팀의 첫 만남은 1887년이었지만, 라이벌 의식이 나타난 시기는 아스날이 템스강 남쪽에 위치한 울리치(Woolwich)에서 북런던으로 옮긴 1913년부터였습니다.
단순한 지역 라이벌이었던 이 두 팀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잉글랜드의 1부 리그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승격 스캔들이 일어나면서 철천지 원수지간이 되어 현재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더비 매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두 팀의 역대 전적은 위 ‘종합 전적’ 표와 같으며, 풋볼 리그 참가 이전의 기록까지 합할 경우 총 206번의 만남을 가졌으며, 아스날이 85승, 토트넘이 67승, 그리고 무승부가 54번입니다.
이슬링턴(Islington)에 위치한 아스날의 홈 구장 에미레이트 스타디움과 해링게이(Haringey)에 위치한 토트넘의 홈 구장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불과 6.4km 떨어져 있습니다.
아스날은 2006년 이전에는 하이버리 스타디움을 사용했으며, 토트넘은 2017년까지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경기를 치르다가 현재 홈 구장의 공사가 완료되는 2019년 전까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치뤘습니다.
※ 그냥 이거는 일개의 축구팬으로 쓴 글 입니다. 가끔 머리 식히러 이른 글을 올려 봅니다. 단순히 재미로만 올린 글려서 정보 따위는 1도 찾아 볼 수 없는 글이니 그냥 가볍게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토트넘(Tottenham Hotspur Football Club)
영국잉글랜드의 프리미어 리그 소속 프로 축구단입니다. 연고지는 런던, 홈구장은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이입니다.
애칭은 스퍼스(Spurs)이고1882년 창단되었으며, 토트넘에 소재하고 있는 화이트 하트 레인을 2017년 5월 14일까지 홈구장으로 사용했습니다.
이후 2019년 4월 3일부터 같은 자리에 세워진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을 새로운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프리미어 리그 최고 성적은 2016-17 시즌 2위, UEFA 챔피언스 리그 최고 성적은 2018-19 시즌의 준우승이며 UEFA 유로파 리그초대 우승팀입니다. 또한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최다 배출한 클럽이입니다.
엠블럼은 수평아리(싸움닭)가 축구공 위에 올라가 있는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클럽의 모토는 라틴어인 ‘Audere EST Facere’로, 영어로는 ‘To Dare Is to Do’, 한국어로는 ‘용감한 것은 도전하는 것이다’란 뜻입니다.
문서명은 현재 가장 보편적인 명칭인 토트넘 홋스퍼로 토론을 통해 정해졌지만, 과거에는 국내 명칭이 통일되지 않아 매체마다 다르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토텐햄 핫스퍼,토튼햄 홋스퍼, 토튼엄 홋스퍼, 토트넘 핫스퍼 등등. 이 중 가장 많이 쓰인 명칭은 ‘토튼햄’으로 아직도 이 표기가 익숙해 혼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005년 8월 정부언론외래어심의공동위에서 당시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 팀들에 대한 표기 심의 결과 영국식 영어인 ‘토트넘 홋스퍼’로 표준 표기를 정했고 이후 언론에서도 모두 이 표기를 따르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 싶이 토트넘 또는 토튼햄은 지역 명이고 핫스퍼는 어떤 영국역사의 유명한 인사의 별명입니다. 그 양반이 싸움닭처럼 성격이 불 같았다고 해서 핫스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별명입니다.
물론 그 전부터 이영표 선수가 토트넘에서 활약하기는 했지만 맡았던 포지션 때문에 각광을 받지 못했지만 최근에 들서는 손흥민 선수 때문에 토트넘 경기가 중계되는 EPL리그를 자주 보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해버지”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 이적한 뒤로 부터 본 사람이라서 그렇게 까지 구력을 내세울만 한 건 없습니다.
여튼간 우리의 주말예능을 담당하고 있는 EPL을 보는 이유중에 하나로 손흥민 선수의 활약을 절대로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아시아인 최초로 EPL 득점왕을 차지했을 때, 물론 살라와 공동 득점왕이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아시아 축구에서 대표로 뽑을 수 있는 중동지역과 극동아시아 지역에서 그 것도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 득점왕이 나왔다는 건 소위 “국뽕”차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스널(Arsenal Football Club)
아스날은 1886년에 다이얼 스퀘어(Dial Square)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게 그 시초이다. 이 축구 클럽은 런던 남동부에 있는 울위치의 왕립 무기고(Royal Arsenal, 로열 아스날)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것으로, 1891년에 프로 구단으로 독립했습니다.
1893년에는 울위치 아스날(Woolwich Arsenal)로 이름을 바꾸고 풋볼 리그(Football League)에 가입했다. 하지만 연고지인 울위치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다른 구단들보다 관중이 비교적 적었고, 이는 결국 구단을 재정적 문제에 빠뜨렸습니다.
결국 구단의 파산이 유력해 보이자, 1910년에 구단을 인수한 헨리 노리스는 연고지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후 1913년에 2부 리그로 강등된 뒤 연고지를 북런던에 있는 아스날 스타디움, 통칭 하이버리로 옮겼습니다. 이듬해 구단 이름에서 울위치를 빼버리고 현재의 아스날 FC로 바꿨습니다.
우리에게는 박주영 선수가 뛰었던 구단으로 잘 알려져 있는 구단입니다. 국내의 커뮤니티도 큰 규모로 운영되는 것으로도 알고 있고 유명한 연예인들 중에서도 아스널 팬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EPL 클럽 인지도로만 따니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다음으로 인지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투표
2부 리그 5위였던 아스날이 1부 리그로 승격, 1부 리그 20위였던 토트넘의 강등 사건.
북런던더비 즉, 토트넘과 아스널이 앙숙이 된 것은 저 투표로 부터 이어집니다.
토트넘과 아스날의 맹렬한 라이벌관계는 아스날이 북런던으로 이주한 것에서 촉발되어 1919년, 헨리 노리스에 의해 토트넘이 강등 당하는 대신 아스널이 승격하는 스캔들이 발생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아스날의 헨리 노리스 구단주는 아스널을 1부리그로 승격시켰고, 1부리그로 승격한 아스날 대신 2부리그로 강등당한 것이 다름 아닌 지역 라이벌 토트넘이었습니다.
1914-15 시즌, 1부 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두 팀은 첼시(19위)와 토트넘(20위)이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도중에 중단되었던 리그가 재개되면서, 리그측에서 참가팀을 20팀에서 22개팀으로 늘리기로 결정합니다.
이 결정이 알려지면서 투표를 통해서 참가팀을 확정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신문을 통해 알려짐에 따라 각 팀들은 각자 자신의 팀이 승격되어야 하는 이유를 로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중에는 토트넘도 있었습니다. 아스날은 같은 시즌 2부 리그 5위를 기록해, 2부 리그 1, 2위가 아니므로 정상적으로는 승격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헨리 노리스 구단주는 아스널의 승격을 이끌기 위해 활발하게 로비를 해서 아스날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19년, 19위였던 첼시 FC는 잔류, 2부리그 1, 2위 팀은 승격, 남은 한 자리는 1부리그 꼴찌팀인 토트넘과 2부리그 3-7위였던 반즐리 FC, 울버햄튼 원더러스, 아스날, 버밍엄 시티 그리고 헐 시티가 입후보해 투표로 결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된다.
결국 아스날이 이 투표에서 승리해 아스날이 1부리그로 승격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아스날 대신 2부 리그에서 뛰게 된 토트넘은 아스날과 질기고 질긴 악연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솔 캠벨(Sol Campbell)
본명은 Sulzeer Jeremiah Campbell 줄여서 Sol Campbell 이라고 부르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토트넘에요.
워낙 사이가 안좋은 두 팀인지라 서로간의 선수 이적도 극히 드물었는데, 2001년에 토트넘 팬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토트넘의 주장이자 구단 유스출신이기도 한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전 수비수 솔 캠벨이 아스널로 자유계약 이적을 한 것입니다.
위에 이미 토트넘 팬들은 피가 꺼꾸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라이벌 구단에 이적료 한 푼없이 가게 된 것입니다.
당시 캠벨은 계약 만료가 코앞인 상황에서 재계약을 미루고 있어서 토트넘 팬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팀의 리더이자 핵심 선수이기도 하거니와 이런 선수를 돈 한푼 못 받고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더욱 더 그랬다.
캠벨은 토트넘의 로컬보이로서 토트넘에는 큰 애정을 품고 있었지만, 팀이 우승권에 들지 못하자 한계를 느끼고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전 수비수라는 위상에 걸맞게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으로 이적을 할 수도 있다며 조금씩 간을 보기 시작합니다.
2000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즈 유나이티드는 캠벨의 이적료로 18m 파운드를 제의했다. 만약 그때 토트넘이 선수가 남을 생각이 1도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면 매각을 고려했을 것입니다.
그 정도 금액은 클럽의 가치 평가보다 크게 못 미치긴 해도, 두 세 명의 준수한 대체자들을 사와 월클 선수 하나를 팔고 팀을 전체적으로 리빌딩하며 발전시킬 기회에 보태는 정도는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면서 그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캠벨의 시장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져 갔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토트넘은 캠벨에게 끌려다니고 있었습니다.
슈가 회장이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그의 주식 매각은 성공했고, 이제 팀이 바뀌어 가는 걸 보여줘야 하는 사람들은 버처와 다니엘 레비, 그리고 ENIC이 되었습니다.
다니엘 레비와 캠벨은 런던 중부의 로얄 런캐스터 호텔에서 만나 미팅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런던 메이페어에 위치한 버처-필립스의 사무실에서 열린 이어진 회담에는 에이전트 앤드류까지 참여했습니다.
그 날 미팅에도 참여했던 플리트는 토트넘이 선수를 잃을 것이라는 걸 확신하게 됐습니다. 다른 이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5월 말 토트넘의 훈련장이었던 치그웰에서 열린 구단과의 마지막 미팅에는 레비, 플리트, 호들, 캠벨, 앤드류가 모두 참여했습니다.
테이블에는 매우 구체적인 재계약 제의가 올라왔다. 켐벨을 클럽 역대 최고주급자로 만들어줬을 재계약은 빠르게 거절됐습니다.
5월 27일 일요일, 토트넘은 캠벨이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 중 하나로 만들어주겠다는 우리의 오퍼가 있었음에도 이적을 택했다’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그들은 선수가 3년 총액 20만 파운드 규모에 2001-02 시즌이 끝날 때 팀이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하면 자유계약으로 풀어준다는 조항을 포함하는 계약을 원하며, 구단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빅클럽으로 이적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려면 토트넘 측에서 솔 캠벨의 주급을 대폭 인상한 계약 조건을 내미는 수 밖에 없었는데 토트넘도 팀의 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재계약이 계속해서 결렬되면서 일단 솔 캠벨은 거의 토트넘을 떠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캠벨은 “재계약을 할 수도 있고 이적할 수도 있는데, 이탈리아에서 연락이 오고 있어서 고려 중임. 프리미어리그의 다른 팀은 맨유나 리버풀 쪽으로 생각하고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아스널은 안 감.” 이런 식으로 발표하여 팬들은 최악의 경우는 없을거라며 안도하고 있었고, 서포터 그룹쪽에서도 “캠벨에게 그동안 활약에 대해서 감사하며 앞으로 다른 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길 빈다.”라는 성명까지 발표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얼마후 솔 캠벨은 토트넘 팬들의 뒷통수를 치면서 아스널과 계약을 해버입니다. 토트넘 팬들은 유스 때부터 토트넘 맨이자 주장이었고 토트넘 수비의 핵심이었던 솔 캠벨의 이적을 눈뜨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웬수와도 같은 라이벌 구단으로 말입니다. 일부 과격한 팬들은 솔 캠벨에게 살해협박까지 했다고 합니다.
북런던더비가 났다하면…
경기장 주변으로 경찰 기마대가 출동하는 모습을 종종 보실 수 있습니다. 축구에 진심인 잉글랜드 사람들에게는 진심으로 대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인명피해도 발생되는 일이 왕왕 발생된다고 하니 당연히 당국에서는 신경을 안 쓸수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토트넘 팬의 경우에는 억울하게 2부리그로 떨어 졌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영국연고지 팀에 비해서 특히 아스널에 억하심정으로 그랬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아스널 팬의 경우에는 정당한 방법으로 합법적으로 1부리그로 올라왔기 때문에 토트넘이 억울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런던 연고지 팀들 보다 토트넘이 법을 지키지 않고 뗑깡을 부린다라고 생각할 겁니다.
반면 이억만리 지구반대편 어느 한국이라는 극동아시아 국가에서 TV로 축구를 보고있는 저 같은 입장에서 개꿀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명분도 충분하고 실력도 큰 차이도 없고 같은 지역 연고지에 개연성이 있는 사연까지 있는 두 축구 클럽팀이 이 악물고 경기하는 게 재미가 없겠습니까?
물론 두 축구클럽 당사자들은 이보다도 괴롭고 힘들고 솔직히 피하고 싶을 수도 있는 경기를 뛰어야 하는 입장이므로 어느 경기보다 더 고달플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간 우리가 주말저녁을 재밌게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은 두 클럽간에 오랫동안 묵혀있는 악감정들로 인해 재밌는 경기를 볼 수 있다는 점 입니다.